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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역사학

자본주의

by 까롱 2022.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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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가이다. 그는 1848년 《공산당 선언》을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저로 발표한 이래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비판하였으며 영국으로 망명한 후 고전파 경제학의 연구에 몰두하여 이를 비판한 《자본론》을 집필하였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기초로 하는 경제학이다. 화폐가치독점생산관계, 자본주의 단계론 등이 주요 논점이며 루이 알튀세르 등의 학자가 널리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는 저서 《자본론》에서 자본주의란 생산 과정에서 사적 생산관계를 기반으로 하여 생산물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생산양식으로 정의하였다.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상에 존재하는 생산양식은 자체 모순에 의해 붕괴를 거듭해 왔으며 자본주의 역시 이러한 역사적 생산양식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정의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존재하는 계급이 생산수단의 소유를 기준으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된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고전경제학이 주장하는 자유가 재산권의 자유만을 의미할 뿐, 노동자에게는 일하지 않으면 굶주릴 자유에 불과하다고 혹평하였으며,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인구론》이 말하는 잉여 인구란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잉여 노동(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산업예비군) 일뿐이라 비판하였다.

 

 

베버의 경제학

베버는 1904년에서 1905년 사이에 집필된 베버의 저서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자본주의가 전통적인 경제 활동의 양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베버는 전통적인 경제 체제에 대항하여 자본주의적인 교환이 이루어지고 근대 자본주의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는 "정신"을 들었다. 이러한 정신이 사회 전반에 점차 확산되어 법률, 임노동의 자유 등이 확산되고 공공의 영역과 사생활이 명확히 구분되게 되었다(노동자의 삶에서 집과 작업장이 분리됨으로써)는 것이다. 따라서 베버는 마르크스와 달리 자본주의의 형성이 생산 수단의 변화가 아닌 정치적 문화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의 등장이 주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베버는 이러한 정신이 개신교, 특히 칼뱅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베버에게 자본주의는 인간의 역사상 가장 발달한 경제 체계였으며 이러한 이유로 사회주의에 대해 반대하였다. 또한 베버는 관료제주식회사와 같은 현대 사회의 특징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해 갖추어졌다고 평가하였다. 사회 과학의 몇몇 분야는 19세기 독일의 사회 이론가 베버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 베버는 생산보다는 시장과 교환이 자본주의의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베버는 길드에 속한 장인과 도제의 관계나 장원의 영주와 농노의 관계와 같은 노동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 체제에 비해, 자본주의가 보다 능률적이고 높은 생산성을 이룰 수 있는 근거로 시장과 교환을 들었다.

 

 

독일 역사학파 및 오스트리아 학파

19세기 말, 독일 역사학파로부터 오스트리아 학파가 분리하였다. 이러한 분리는 한계효용 이론을 주창한 멩거에 의한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이후 20세기에 들어 영향력 있는 경제 학파로 자리 잡았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대표적 이론가인 슘페터는 시장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면서 일어나는 창조적 파괴를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강조하였다. 슘페터는 제반 산업이 성장과 쇠퇴를 겪으면서 경제 규모가 성장함을 지적하면서 변화에 소극적인 산업은 결국 사라지고 적극적인 변화를 시도하는 산업이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기술하였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일원인 미제스와 하이에크는 20세기에 대두된 사회주의의 계획 경제를 비판하면서 시장 경제를 옹호하였다. 이들은 시장 경제만이 복잡한 현대 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오스트리아 학파는 세의 법칙,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이론을 기반으로 공급자 주도의 경제를 실현하고자 하였다. 오스트리아 학파에게 있어 자본주의의 본질은 생산의 결정에 대해 국가의 개입을 배제하는 것이다. 독일의 역사학파의 관점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시장을 위한 생산 체계이다. 이들의 주장은 여러 면에서 베버와 비슷한 측면이 있으나 시장과 화폐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독일 역사학파는 자본주의의 형성을 본질적으로 화폐와 신용에 대한 제한이 있던 중세의 전통적 경제활동에서 근대 금융 체계로 변화하는 과정이었으며, 이러한 변화는 여러 복잡한 경로를 거치며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의 원인으로 이윤 추구를 지적한다.

 

 

 

케인즈 경제학

케인스 경제학은 디플레이션과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1930년대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대공황의 해결책으로 케인스의 이론을 수용하였다. 케인스학파는 불경기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세금 감면, 국채의 발행, 경기 연착륙을 위한 지출 등 정부의 적자 지출 정책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함으로써 사람들이 돈을 쓰게 만드는 방법이다.

스라파는 후일 케인스의 이론에 바탕을 둔 네오 케인스학파를 세웠다. 스라파에게 자본주의는 생산 욕구에 기반한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총체적인 사회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스라파는 자본주의가 보다 높은 이윤을 추구하기에 역동적이나 동시에 그로 인한 사회 경제적 불안요소를 내포한다고 보았다. 1937년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를 출판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투자의 감소 국면에 접어들면 심각한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을 지적했다. 케인스는 높은 실업 상태에서도 자본주의 경제가 균형 상태를 무한정 지속할 수 없음을 들어 세의 법칙을 반대했다. 그는 대공황과 같은 자본의 쇠퇴 국면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상품이나 용역의 구입보다 유동자산을 더 선호하므로 자본의 쇠퇴가 더욱 커지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어느 정도의 투자의 사회화"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신고전경제학과 시카고학파

신고전경제학은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위치에 올랐다. 이들은 노동 가치설을 부정하며 사람에 따라, 같은 사람이라도 때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가치의 주관성을 주장한다. 한계 주의는 이러한 가치의 정도를 한계효용과 한계비용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자본가의 이윤 획득은 현재의 소비량, 위험의 선택, 생산의 조직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신고전경제학의 일파인 시카고학파는 자유 시장 옹호와 통화주의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리드먼은 시장은 외부의 간섭이 없다면 고유의 안정성을 유지한다고 보았으며, 불경기는 오로지 정부의 개입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프리드먼은 대공황의 원인이 투자의 감소라는 케인스의 견해에 반대하여 연방준비제도의 통화 공급 감소 정책 때문이라고 보았다. 현재 연방준비제도의 의장인 버냉키는 프리드먼의 이러한 이론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고전경제학의 정치적 실현은 흔히 신자유주의로 불린다. 이들은 오늘날 세계화를 주창하고 있으며 많은 나라에서 강력한 정책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전경제학에 대한 비판 역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신자유주의와 신고전경제학에 대한 찬반양론이 격렬하게 벌어지기도 하였다.

최근의 경제학 이론 가운데 신고전경제학이 미국을 중심으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은 소유권의 유지에 초점을 두고 비교적 중립적인 형태를 보이는 정부 시책과 광범위한 시장 조정을 선호하며, 노동 시장 유연화, 대주주에 의한 기업 지배, 정부 금융보다는 자본 시장에 기반을 둔 자금 운용 등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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