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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역사학

요하문명

by 까롱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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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문명

 

연대는 기원전 4700년 ~ 기원전 2900년경으로 지금까지 츠펑(赤峰, 발견 당시엔 틈새 성), 링 위안(凌源), 젤 핑(建平), 차오양(朝陽) 등 500여 곳의 유적을 찾아내어 발견 지역은 옌산 산맥의 북쪽 랴오허 지류의 서 랴오허 상류 부근에 널리 퍼져 있다. 홍삼 문화는 옥(玉) 문명(文明)으로 유명하며 홍삼 문명이라고도 한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인 발굴을 하면서 상룽과 문화(興隆窪文化), 홍삼 문화, 나와봐도 겨우 문화(趙寶溝文化), 신어 문화(新樂遺跡) 등으로 이어지는 요하 일대의 신석기 문화를 문화(culture)의 단계를 넘어선 새로운 문명(civilization)으로 간주하여 '랴오허 문명'으로 명명하여 부르고 있다. 중국에서는 요한 유역에서 새로운 유적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도리이 류 조의 처음 발견 당시의 추정보다 연대가 훨씬 오래된 기원전 8000년까지 인상되었다면서, 광의의 홍삼 문화에 기원전 8000년경의 신어 문화까지를 포함해 '요하 문명'으로 간주하여 홍삼 문화가 황하문명의 원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중국 학자들은 랴오허 지역의 사람들이 남하하여 황허문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내몽골 자치구 츠펑시에는 붉은 기운이 도는 홍삼이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옥기가 발견돼 홍삼 옥기(紅山玉器)라 하였고 중국 중원에서 보기에 홍산 뒤쪽에서 발견되었기에 내몽고 자치구의 츠펑시에 있는 홍삼 호우(红山 後, 홍삼 후) 유적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 동남부, 랴오닝성 서부와 중부, 동부에 해당한다 결국 1930년 귀국한 양 씨용은 그해 겨울에 절봉으로 향했다. 중국 중앙연구원 고고 분과 담당자로서 내몽골 임시 일대와 헤이룽장 등 동북 지방에서 잇따른 신석기 유적 발견을 바탕으로 본격적 발굴작업을 계획한 것이다. 하지만 정세 불안과 건강 악화로 발굴이 지연되다 1934년 ‘열하 고고 보고(熱河考古報告)’로 학계에 첫 보고를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보고서엔 “동북 4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틈새 성) 발굴작업을 완성하지 못했지만 절대 잊어선 안 된다”라고 썼다.

그러나 실제적인 발굴은 일본 고고학의 아버지인 하마다 고사쿠(濱田耕作)로 당시의 대규모 발굴단을 끌고 와 발굴을 진행했다. 이렇게 1906년 일본의 고고학자 도리이 류 조에 의해 발견되어, 1935년 하마다 코사크(濱田耕作)나 미즈노 센 이치(水野清一) 등에 의해 대규모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후 각지에서 발굴이 잇달았으며, 채도와 세석기의 특징을 가진 이 문화는 1954년 홍삼 후를 기념하여 홍삼 문화라고 명명되었다. [2][3][4]

중화인민공화국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이 실시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한 공정 연구의 일환으로, 2003년 6월부터의 '중화 문명 팀원 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을 통하여 중국은 황하문명보다 빠른 랴오허 문명을 중화 문명의 뿌리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의 명칭은 내몽고 자치구의 츠펑시에 있는 홍삼 호우(红山 後, 홍삼 후) 유적에서 유래하였다. 홍삼 문화는 19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의 저명한 인류학자 겸 고고학자인 도리이 류 조가 절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우연히 많은 신석기 유적과 돌로 쌓은 묘(적석묘) 등을 발견한 것. 이것이 후대 세계를 놀라게 한 홍삼 문화 적석총 유적이다. 동북 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였다. 또한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당대에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후 20세기 초 중국에 온 프랑스 예수회 신부 에밀 리쌍(Emile Li cent·1876~ 1952)도 22곳의 신석기 유적을 발견했지만 류 조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글만 남겼다. 그러나 1920년대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 중이던 고고학 도량 씨용(梁思永 [liángsīyǒng]· 중국 철학자 량치차오의 아들)은 이 글을 놓치지 않았다. 현재의 명칭 더욱이 2012년 7월 초,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내몽고 제1공작대와 아오한치(熬漢旗) 박물관의 합동발굴팀은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츠펑시 오한치의 싱룽고우(興隆溝·흥륭 구) 유적 제2지점에서 53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도소 남신상(陶塑男神像, 흙으로 구운 남신상)’을 발굴하였다. 홍산문화 유적에서 여신상은 발굴된 적이 있지만, 남신상이 발견된 것은 중국 최초이다. 인민일보·CCTV 등 중국 언론들은 “5300년 전의 조상 발견”, “중화 조신(中華祖神) 찾았다”는 내용으로 발굴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이와 함께 2004년 11월, 기존의 랴오닝성박물관(遼寧省博物館, 요녕성박물관)을 개축하여 건축면적 2만 8900 m2, 12개 전시실에 전람 면적 8530m 2에 이르는 신관을 개관하였고 2010년 8월 8일, 중국 내몽고 자치구 적봉 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이같이 중국 내몽고에는 박물관 신축과 개관, 확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적봉시 인근의 오한기(敖漢旗)·임서(林西) 박물관은 신축을 마치고 2010년 후반기에 이전했고 극십극등기(克什克騰旗) 역사박물관과 파림좌기(巴林左旗)의 요상경(遼上京) 박물관은 그전에 이미 신축해 개관됐다. 랴오허를 중심으로 발견된 고고학적 성과, 즉 홍산문화를 정점으로 하는 이른바 '요하문명'을 집중 전시하고 있는 것이 다홍산 문화의 도기는 진흙 홍도 및 협사회도(夾沙灰陶)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었고 진흙으로 만들어 붓으로 그림 그린 채도(채문 토기)는 취사나 식사 등에 사용되고, 문양이 새겨진 협 사회도는 음식을 담는 곳에 사용되었다. 다른 도기에서는 흉상이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홍산 문화에서는 양사오 문화와 같은 채도 문화는 발달하지 않았지만, 룽산 문화의 흑도와 같은 세련된 조형미를 가진다. 또 후기 유적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환도도 발견되고 있다.

홍산 문화의 분묘에서는 비취 등의 석재로 동물 등의 형태로 조각한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다. 돼지, 호랑이, 새 외에도 용을 새긴 것도 발견되고 있다. 높은 공예의 수준이 홍산 문화의 큰 특징이 되고 있다. 《저룡(猪龍)》또는 《옥저룡(玉猪龍)》이나 《옥웅룡(玉熊龍)》등으로 불리는 홍산 문화의 옥용(용을 조각한 구슬)의 조형은 단순하며, 용이 원형으로 된 것이 많지만, 후기로 가면서 반용(盤龍), 문용(紋龍) 등의 구별이 분명해진다. 고고학자 중에는 홍산 문화가 이후 중국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있다.

주로 저룡(猪龍)이나 옥저룡(玉猪龍)이라고 명명하는 형태의 용을 본뜻 모양을 중국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다. 홍산문화에서 적석총(돌무지무덤)과 옥기가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하여, 홍산문화가 적석총이 다수 발견되는 고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문화의 연원이라는 견해가 나오면서 대한민국(大韓民國))과 중국에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국사 수정 공정은 이런 일련의 역사 관련 국가 공정의 완결판인데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을 토대로 중국사를 전체적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2005~2007년 기초자료 수집을 마치고 2007년부터 본격 수정을 시작해 2015년 완료를 목표로 중국의 정사(正史)인 25사를 대대적으로 수정해 재편 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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