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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명칭 임진년에 일어난 왜의 난리란 뜻으로 지칭되며 그밖에 조선과 일본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란 뜻에서 조일전쟁(朝日戰爭), 임진년에 일어난 전쟁이란 뜻에서 임진전쟁(壬辰戰爭), 도자 기공들이 일본으로 납치된 후 일본에 도자기 문화가 전파되었다 하여 도자기 전쟁(陶瓷器戰爭)이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당시 연호를 따서 문록・경장 의역(일본어: 文禄・慶長の役 (ぶんろく・けいちょうのえき) 분로쿠 게이쬬우노에키[*])이라 하며,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에서는 당시 명나라 황제였던 만력제의 호를 따 만력 조선전쟁(萬曆朝鮮戰爭, 중국어: 萬曆朝鮮之役), 혹은 조선을 도와 왜와 싸웠다 하여 항왜 원조(抗倭援朝)라고도 하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는 임진 조국 전쟁(壬辰祖國戰爭)이라고 한다. 그 밖에도 7년간의 전쟁이.. 2022. 10. 26.
병자호란 개요 왕실이 피난한 강화도의 함락, 남한산성의 포위를 풀기 위한 근왕병의 작전 실패 등으로 말미암아 항복하였다.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명청 교체기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며, 조선으로서는 짧은 전쟁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쟁 포로로 수십만의 백성이 청 제국으로 끌려가 그 사회적 피해가 유례없이 막심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 12월 28일 ~ 1637년 2월 24일까지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청 제국의 성덕제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이전에 배후의 안전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선을 침공하였고, 인조와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였으나 청의 포위로 인한 굶주림과 추위,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 형제의 관계를 맺었으나, 강화조약에 따라 명과의 관계에는 변함이 없었다. 홍타이지가 창제를 결심하.. 2022. 10. 19.
을묘왜변 개요 1544년 사랑 진에서 난동을 부리던 왜구들은 이후 조선에서 문호를 닫자, 대마도에서 무역을 할 수 있게 항로를 열어 달라고 요구하여 조선에서는 삼포(부산포, 제로, 염포)를 열었다. 그러나 그 뒤에도 소란을 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뜨렸으며, 제주도와 다도해, 전라남도 해안가를 침략했다. 급기야 1555년(명종 10년)에 전라남도 연안에 있는 달량포(達粱浦)에 왜선 60여 척이 쳐들어왔다. 곧 근무 중이던 변장들이 왜구들의 기습공격에 살해되고 순식간에 10개 진이 함락되었다. 을묘왜변(乙卯倭變) 또는 달량 왜 변(達梁倭変)은 1555년(조선 명종 10년) 조선 명종 때 일어난 왜구의 습격이다. 왜구들이 전라남도 해남군 달량포를 기습하여 전라남도 영암·강진·진도 일대를 습격하고 10진이 함락되었으며.. 2022. 10. 19.
남한산성 공성전 남한산성 공성전 1636년 12월, 청군이 압록강을 넘어 조선을 대거 침공하였다. 청군은 임경업이 지키는 백마산성과 홍명고가 지키는 평양성 등 주요 격전지가 될 만한 곳을 회피하며 빠른 속도로 남하하여 개성을 함락하고, 한양 코앞까지 진격해왔다. 이에 조선 인조는 한성부 판윤 김경진을 강화도 검찰사로 임명하고, 이민구는 강화 부사로 임명하여 강화도로 보냈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 왕자와 왕족들 역시 이곳으로 피신시켰다. 인조 또한 강화도로 향하려 했으나 청군이 한양에서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미리 차단하자 하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입성하여 13,800여 명의 군사를 확보하며 장기 항전을 꾀하려 하였다. 남한산성에는 미곡 14,300여 석과 피, 잡곡 9,500여 석, 장 220 여독이 있었는데, 이는 .. 2022.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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