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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역사학

이집트 의학

by 까롱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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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의료


모든 고대문명이 그러하듯 고대이집트 의료도 일차적으로 신의 초자연적 권능의 힘을 빌린 행위였다. 질병의 원인이 초자연적·종교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치료 또한 인간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원시적인 질병 관에서 보듯 이집트에서도 영혼이나 악귀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있었고 주문, 부적 등으로 이에 대항하는 처치법이 있었다. 그러다가 신들이 악귀를 물리치는 존재로 등장한다. 어떤 신은 병도 주고 치료도 한다. 주술적인 치료는 기도 요법으로 바뀌게 된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비옥해진 옥토를 중심으로 발달한 문명이다. 농업뿐 아니라 성학(星學), 역학(歷學), 수학(數學), 토목학(土木學) 등이 발달했고 기후, 풍토 때문에 식물과 광물에 대한 지식이 풍부했다. 이런 배경은 질병의 원인론이나 치료법에 직접 관계가 있다. 그러나 고대문명을 지배한 종교의 힘은 메소포타미아의 의술과 마찬가지로 이집트 의술에도 큰 영향을 끼쳤으므로 이 두 가지는 매우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료(史料)의 연대 결정이 어려운 탓도 있었겠지만 의술에 서는 발전단계가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역사학자 지게 리스트(H. Sigerist)의 의견처럼 이집트 의학에서는 분명히 주술-종교적 의술과 경험적·합리적 의술이 구별되면서 그 발달을 촉진했다고 하는 점이 다르다.

 


이집트 의심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의신(醫神)은 인신조수(人身鳥首)의 모습을 한 코트(Tot)며, 이 신은 동시에 전지전능한 학문·예술의 신이기도 했다. 또한 그 밖의 의심으로 레(Re)와 석양의 신 오시리스(Osiris)의 누이동생 이시스(Isis)가 있다. 분만의 신 배스(Bes)와 셰퍼드(Êpet)가 있는가 하면 전염병의 신 세트(Set)도 있다. 질병(pest)의 여신 세크메트(Sechmet)는 매우 중요시되어 기원전 1800년 이전, 즉 중왕국(中王國) 이전에는 이 여신에 봉사하는 승려의사들이 있어 때때로 세크메트의 이름을 자기의 호칭의 하나로 삼는 경우도 있었다. 몸의 사지에도 특정한 신들이 살고 있었다. 미라를 만들기 위해 인체를 절개한 승려들이 본 것은 객관적인 실체로서의 내장이나 근육, 골격이 아니고 신들의 살림집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해부학을 한 것이 아니라 지게리스트의 말대로 ‘신화적 해부학’을 한 것이다.

카훈 파피루스 다음으로 오래된 것은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Edwin Smith papyrus)로서 미국 이집트학의 개척자 에드윈 스미스(Edwin Smith)가 1862년 룩소(Luxor)에서 이집트 사람으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1873년 독일 이집트 학자 게오르크 에버스(Georg Ebers)에 의해 구입된 에버스 파피루스(Ebers papyrus)와 함께 제18왕조 초기, 기원전 1600년의 전반기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버스 파피루스가 스미스 파피루스(Edwin Smith papyrus의 약칭)보다 조금 늦게(기원전 1550년경) 기술되었으리라 짐작하고 있는데, 두 가지 모두 피라밋기(期)에 이르는 고(古)문헌이 소개되어 있어 무척 오랜 의술이 기록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집트의학은 질병과 그 치료법에 대한 경험·과학적 관찰을 토대로 합리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것은 고대 이집트 의술을 살펴볼 수 있는 사료(史料), 특히 초기의 의서(醫書)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질병과 치료에 관한 기록이 적힌 파피루스(papyrus) 두루마리였다. 이 파피루스는 특수한 증례(症例)에 대한 단일 논문들을 모아 총서형식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는데 가장 최초의 이집트 의서는 카훈(Kahun) 시(市) 유적에서 발견된 단편으로 카훈 파피루스(Kahun papyrus)라는 것이다. 이것은 제12왕조 중기(기원전 약 1900년)에 저술된 것으로 보이며 수의(獸醫) 파피루스와 산부인과 파피루스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은 병상을 기록한 처방집으로서 복잡한 증후군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소박하나마 합리적인 치료방법을 기록하고 있으며 신비적-종교적 요소가 전혀 없다고 한다.

에버스 파피루스는 의학전서(醫學全書)와 같은 것으로 내과 질환, 눈, 피부, 사지, 부인병 등에 대한 처치법과 처방이 기록되어 있는데 약 먹기 전에 읊어야 할 주문도 기술되어 있다. 주혈흡충(住血吸蟲)을 위시한 여러 가지 기생충에 관한 설명이 있어 이집트 사람들이 질병을 기생충의 침입으로 설명하고자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부나 생리에 관한 지식에 대한 매우 부정확하나 체액 순환에 관한 가장 오래된 설명을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 인은 메소포타미아 인과는 달리 죽음을 결말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밝은 내세를 상상하고 이를 위해 시체의 영구보존을 시도하였다. 철학보다 과학적 소질이 많다고 평가되던 이집트 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이 의학발전에 어떤 기여를 하였는가는 잘 알 수 없다. 인체생리는 나일 강의 범람과 감소의 영원한 반복에 비유되었다. 인간은 아직 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종교대로 인간의 건강한 삶에 기여했고, 경험적·합리적 의술은 그런대로 원시적 단계를 벗어나 앞으로 있을 고도의 의술을 뒷받침할 기반을 이루었다. 그러나 많은 왕조와 세월을 거치면서도 의술의 수준이 뛰어나게 앞설 수 없었던 이유는 이집트의 전체주의, 강력한 전통주의에 있었다. 이것은 동방 고대문명의 한결같은 경향으로 과거의 지식과 경험만을 답습하고 새로운 것은 그것과 모순되지 않는 범위에서만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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