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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역사학

직물

by 까롱 2022.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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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실과 씨실을 직기에 걸어서 직각으로 교차시켜 짠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피륙의 한 종류이며 옷감으로 사용되는 천, 원단 등이 대표적인 직물이다. 그밖에도 실내장식용, 의료용, 운송용, 산업 자재용 등 그 용도가 다양하다. 실의 교차 방법에 따라 평직·능직·수자직 등으로 분류된다. 직물의 짜임새는 옷감의 강도·촉감·내추성·보온성·통기성 등과 관련이 있다. 원료에 따라 견직물, 모직물, 마직물, 면직물 등으로 나뉜다.

날실은 세로 방향으로 놓이며, 씨실은 가로 건너 짠다. 피륙을 짜는 일은 세로로 놓인 날실에 씨실을 가로로 건너 엮는 과정이다. 실로 짠, 옷이나 이부자리 따위의 감이 되는 물건은 천이라고 부르고, 그 조각은 헝겊이라 한다. 직물이나 천은 실이나 가닥으로 일컫는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인 섬유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유연한 짜임새이다. 실은 기다란 가닥을 만들기 위해 울(양털), 리넨, 면 등을 꼬면서 만들어진다. 직물은 손으로 짜기, 뜨개질하기, 코바늘 꿰기, 매듭 매기, 직물에 힘 가하기 등으로 이루어진다.

 


염직의 성립


염직을 그 제작 기술과, 그것을 의료로 하거나 실내장식의 재료로써 사용한 점, 그리고 예술적 관점에서 본다면 염직의 역사는 고대 중국·인도·페르시아를 통하여 유럽에 전해진 소위 실크로드의 교역 시대인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페르시아에서 발달한 문직·금직은 비잔틴을 통하여 이탈리아에 퍼졌고, 이윽고 르네상스를 거쳐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 전해졌으며 오늘날의 직물공업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더욱이 옷감을 짜는 데도 물들이는 데도 그 기술은 각 민족·각 지역이 저마다 고유한 기술을 스스로 발견하고 발달시키고 있으므로 반드시 기술의 발생을 일원적으로 한정할 수 없다. 직물은 씨줄과 날줄을 원칙으로 하고 상하 직각으로 교차시켜 구성한 것으로서, 날줄을 가지런히 정렬하여 세워놓은 폭과 씨줄을 짜 넣어서 얻어진 길이를 갖는 평면적인 이른바 포지라고 할 수 있다. 직물·메리야스·레이스·망사 펠트(felt) 등도 모두 섬유제품이다.


고대의 직물


가장 오랜 직물로서 스위스의 호상 생활인의 마직물이 현존하고 있다. 신석기시대 것으로, 수천, 수만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집트의 미라를 싸고 있는 마직물은 기원전 수천 년 전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견직물은 은 시대에 능직을 짰다고 하며 후에 끔 직도 짜냈으며 실크로드의 번성으로 계속되었다. 모직물은 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하였고, 주요한 의료(衣料)가 되어 왔다. 금식은 인도에서 기원전 8세기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콥트


이집트는 일찍부터 마직물을 만들고 있었는데, 마포를 바탕으로 하여 이것에 모사를 사용하여 철칙으로 하였고, 1세기∼9세기에 걸쳐서 화려한 직물을 만들었다. 이를 콥트직이라 부르고 있다. 콥트직에는 초기 그리스·로마식의 인물·꽃무늬를 모티프로 한 흑백으로 표현된 것, 페르시아 사산 조식의 섬세하고 사색적인 표현으로 된 것, 비잔틴식의 다색 적이고 호화로운 것으로 나뉜다.


페르시아의 직물


페르시아로 대표되는 이슬람 제국의 직물은 정교하기로 유명한데 금식의 견직물·비로드(우단)·융단 등도 만들었다. 그 정치한 디자인은 후세까지 각지의 직물의 규범이 되었고, 더욱이 융단은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에서 최고품으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의 직물


이탈리아의 직물은 15세기를 정점으로 발달하고 무늬 비로드의 기술이 높은 수준을 보인다. 이것이 프랑스로 진전된다.


프랑스의 직물


르네상스 이후 17세기에는 고급직물의 중심이 프랑스로 옮겨져 루이 14세 시대의 바로크도, 루이 16세 시대의 로코코 조를 비롯하여 앙피르 양식, 근대 디자인의 각 양식을 차례로 선보임으로써 파리는 오늘날까지도 세계 디자인계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고블랭


이집트의 콥트와 마찬가지로 철칙에 속하는 것이다. 루이 14세 시대를 최성기로 하고 전후에 많은 태피스트리(벽 휘장)를 남기고 있으며, 현재도 뤼르사(Lea Lurca) 같은 작가가 존재한다. 벽 휘장이나 의자에 붙이는 천·쿠션 등은 고급 직물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의 직물


18세기 이후 모직물이 발달하였고 이윽고 산업혁명으로 방적 직조의 대량 생산체제가 갖추어졌다. 더 나아가 파킨슨의 인조염료, 살 동네의 인조견사가 나와 근대 직물 공업 시대로 접어들었다.


견직물


비단은 양모·면·삼베 등 천연섬유 그리고 가죽과 함께 기본적인 옷감이었으나 비단이 가장 선호도가 높았다. 그러나 섬유 중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비단에 대한 인류의 동경은 인공적으로 비단을 생산하려고 시도하게 만들었다. 2차 산업혁명기에 많은 과학자의 연구 결과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다양한 종류의 인조견사와 합성섬유가 발명되었다.  1885년에 인조견사 샤르도네런가 발명되었고 이어서 재생섬유인 레이온(1891년)과 유리섬유(1925년)가 개발되었다. 그러던 중 1935년에 미국인 월리스 캐러더스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라는 평가받는 나일론을 발명한 후 비단은 수요가 줄어들며 고급 옷감 정도로 이용되고 있다.
비단 직조에 대한 기원은 명확지 않고 이집트나 중국 기원설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지금으로부터 약 4천 6백년 전 주나라 왕실에서 비단을 왕의 의복으로 사용하였으며 금호를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한나라 때에는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나 서양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비단은 아시아의 대부분 지방에서 가장 귀한 옷감으로 취급되었으며, 아주 오래전부터 동아시아의 중요한 수출품으로 자리 잡았다. 비단은 도자기, 향신료 등과 함께 산업혁명 이전 시대의 무역에서 무역량이 큰 상품 가운데 하나였다.

6세기 중반에 비단 직조 기술이 중국으로부터 중동과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9세기에 시칠리아가 아랍에 점령당했을 때 비단 직조가 이곳에서 성행하였다. 그 후 유럽 전역으로 비단 직조 술이 전파되었고 16세기에는 프랑스 남부 이용에서 비단 산업이 번창하였다. 비단 산업은 17세기에 인도상 면직물인 캘리코와 모슬린이 대량으로 수입되면서 다소 위축되었고, 18세기 후반에 산업혁명으로 수력과 증기력을 이용한 면직 기가 발명되면서 타격을 받았다. 19세기 말에는 프랑스의 누에 농가에 누에 전염병 돌아 심각한 피해를 보기도 했다. 노 세마 봄비 시스라는 소포 자충에 의해 발생하는 누에 미립자병은 파스퇴르와 제 르네의 노력으로 의해 1865년에 원인이 밝혀지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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