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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역사학

대륙 사관

by 까롱 2022.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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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삼국 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삼국시대의 나라들이 모두 중국에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주로 인용하는 자료 중 하나는 바로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등장하는 메뚜기 관련 기사이다. 지금은 한국에서 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를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삼국사기 등에 메뚜기 떼로 인한 피해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메뚜기 떼가 지금도 존재하는 중국에 삼국시대의 나라들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네티즌들의 반박 주장을 통해 메뚜기 관련 기사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것이 알려지자 조선도 중국에 있었다는 주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삼국 초기의 천문 기록


1996년 서울대학교 천문학과 박창범 교수가 새로운 연구 방법으로 천문 기록을 분석, 삼국의 관측지가 현 중국에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박창범 교수는 천문학자로서 '고고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사학계에 제시하였으며, 그 결론에 대한 판단은 사학자들이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후에 이문규 교수 등은 토론과 학술발표를 통하여 천문학의 역사 연구를 위한 도구로서의 유용성은 인정하였으나, 결과의 해석에 대해서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대륙 백제

백제는 후에 점점 강하고 커져서 작은 나라를 병합하고 그 나라가 본래 고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에 있었는데 진나라 때 구려서 이미 요동을 점령하고 백제 역시 요기서. 진형의 2군을 점령하고 백제군이다. 백제전
백제국은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 리에 함께 있었으며 그 후 고구려는 요동에 있었으며 백제는 요소에 있었고 백제가 다스린 곳은 진령군 진 평 현이라 불렀다. 권 97
금주, 의주, 내훈 등지가 모두 백제이다. 
북위가 병력을 보내어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백제에 패하였다. 백제는 진대부터 요소와 진형 2군을 차지하고 있었다.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 시절에는 강한 병사가 1백만 명이나 되어 남쪽으로는 오월을 침범하였다. 최치원 전
대륙 신라

당나라 때 계림(雞林)으로 일컬어졌던 곳은 당연히 오늘날의 길림(吉林)으로 생각되는데 말이 그릇되어서 이렇게 된 것이요, 따라서 신라·백제 등 여러 나라들도 역시 모두 그 부근 지역에 있었다…《만주 원류고》
'박 연암집(朴燕巖集)'에 푸젠 성(福建省)의 천주. 장 주기 일찍이 신라의 땅이 되었다고 하니 하서(何書)에 거(據)한 말인지 알지 못하여 인용치 못하거니와 진흥 대왕이 흑 해외도 경략하여 이 유적(遺蹟)을 끼친 곳이 있는가 한다. 《조선상고사》

대륙 백제성에 대해서는 학계의 논의가 분분하나, 대륙 신라는 인정되지 않고 있다.


대륙 고려설


고려의 영토가 중국에까지 미쳐 있었다는 주장이다.  20년간 강역 연구를 하고 일본 궁내청 왕실도서관에 한국 상고사 서적이 있다고 밝힌 박창화 교수는 에서 고려의 영토가 만주를 포함한다고 주장하였다. 대륙 고려를 주장하는 이들이 인용하는 주요 자료는 중국 25사 중 하나인 송사에 나오는 북송과 금의 마찰에 대한 부분이다. 북송의 왕족이 금에 잡혀갔을 때, 남송이 북송으로 가기 위해 고려에 길을 내달라고 부탁한 것을 보면 고려의 영토가 대륙에도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외에도 아래와 같은 자료들이 인용된다. 대륙사 간에 대해, 기존 역사학계는 학술적으로 근거가 부족하여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륙 사관이 근거 자료로써 제시하는 규원사화, 환단고기 등의 사서는 서술되었다고 주장되는 시점에서 보았을 때는 사리에 맞지 않는 서술들이 있고, 19세기 이후 문호 개방을 통해 들어오거나 의미가 변화한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이들 책이 19세기 이후의 위작이거나 변조된 문헌이라고 본다.  또한, 학계는 이 문헌들이 실제로 서술된 시점에서 생각할 때, 문헌들의 서술이 대륙 사관론자의 주장처럼 민족주의 사상을 고취하기보다는 오히려 일본 제국의 대동아공영권 등의 주장에 영합하는 친일 민족주의적 성격을 띨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편, 대륙 사관이 주요 반박의 대상으로 삼는 소위 반도 사관은 일제가 만들어낸 반도 사관과 전혀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 지적된다.  대륙 사관은 반도 사관에 대응하는 개념이 아니라 일제의 반도 사관이 설정해 놓은 틀에 사로잡혀 사고하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오히려 일제가 만든 반도 사관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대륙사 간에 대한 비판은 재야사학계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재야사학자 박영규는 자신의 저서 《한 권으로 읽는 백제 왕조실록》을 통해, 대륙 사관을 비판하였다. 즉,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지 않는 갖가지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것만으로 대륙 사관을 주창할 수 없다는 것인데, 삼국시대 이후를 다루고 있는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도 현재 한국에는 없는 기상이변이나 메뚜기 떼 피해 등 자연재해가 등장한다. 대륙 사관을 주장하는 이들은 대륙 사관은 반도사관(半島史觀)에 대응하는 개념이며, 일제강점기의 반도사관이 한국 역사에 반영되어 있기에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기존의 고대사 연구와 다른 틀을 주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존 학계는 역사서의 요동(遼東)을 현대의 요동(랴오둥)과 같은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대륙 사관론자들은 일부 문헌의 해석을 근거로 지금보다 해당 지역이 더 서쪽에 있었으며, 따라서 고구려의 실제 강역도 서쪽으로 더 넓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현 주류 사학자들과 대립 관계에 있는 재야 사학자 및 여러 개인 연구가들에 의해 신봉되고 있으며, 이를 옹호하는 인터넷상의 역사 동호회도 존재한다. 대륙 사관(大陸史觀)은 한국사의 일부로 취급되는 국가와 한국인의 활동 영역을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 또는 보하이만 부근과 산둥반도를 비롯한 중국 본토의 동쪽 해안까지 확장하는 역사관이다. 이러한 관점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서이며 1] 백제의 중국 동해안 진출이나 한국 역사의 일부로서의 발해사가 강조되었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주장이 다양해져 삼국시대의 중심 지역이 중국 본토였다는 주장이 등장하였고2], 일부에서는 이를 확장하여 고려나 조선이 한반도가 아닌 중국 본토에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남·북한의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주장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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