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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역사학

역사학

by 까롱 202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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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역사가와 그가 다루는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즉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에드워드 핼릿 카(Edward Hallett Carr)의 정의가 잘 알려져 있다.

 

 역사는 무엇인지에 관한 저서를 내고, 정의를 내린 학자는 많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 역사란 어떻게 이해되어 왔으며, 어떤 의미를 부여받아왔는가?’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시대와 모든 사회는 그 당시의 지적 수요에 부응하는 적절한 역사 개념을 만들어 내므로 오늘날 역사 개념의 의미가 다양하고 모호한 것은 역사 개념 속에 서로 다른 시대에서 유래한 다양한 의미들이 지층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역사’라고 하면 실제로 일어난 일, 즉 과거의 시간 및 행위 그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이에 대한 서술과 이를 통해 얻은 과거에 대한 지식의 의미를 갖고 있다. 전자는 역사의 대상, 즉 소재나 주제이지만 18세기 중반 이전까지 서양에서 ‘역사’는 후자의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흔히 역사를 과거와 동의어로 알고 있다. 대부분 역사를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역사는 옛날이야기를 뜻한다. 역사는 일어난 사건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를 전달하고 기록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의 평가’나 ‘역사의 심판’을 받겠다는 정치적인 표현들에서의 역사의 의미는 또 다르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는 선언했는데 이는 역사는 본질적으로 현재의 눈으로 현재의 문제에 비추어 과거를 본다는 의미이다.

 

이 역사관은 혼란한 시기에 널리 연구되거나 주창하여 공감을 얻는다. 하지만 평온한 시대에는 과거의 시점에서 현재를 비추어 연구하는 역사관이 추세가 된다.
사실 역사로 후세에 남길 만한 사실이다. 현재성을 바탕으로 한 사실의 선택과 해석은 궁극적으로 그 사실의 객관적 진실에 접근해가는 일이며, 그것이 추구하는 방향은 인간 조건의 개선, 역사 주체의 확대, 복지사회의 추구, 이상 사회의 실현으로 연결되고, 여기에 역사의 현재성이 갖는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역사관 한 개인이나 집단이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며 평가하는 사고방식 혹은 신념 체제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세계관, 가치관, 계급적 이해관계, 정치의식, 민족의식 등 일정한 사회적 입장과 계급성이 하나의 논리적 인식의 체계, 사상 구조를 갖춘 것으로, 사관이라고도 부른다.


역사를 움직이며, 변동시키는 힘을 물질적인 요소에서 찾느냐 아니면 정신적인 것에서 찾느냐에 따라 유물사관, 관념 사관으로 분류된다. 유물사관을 신봉하는 사람이라면 인류 문명의 기원과 발달을 이해하는 요소로 ‘물건’, ‘생산’, ‘기계’, ‘계급’, ‘사회경제적 구조’ 등을 꼽을 것이며, 관념 사관을 믿는 사람이라면 사건이나 제도의 껍질 속에 숨어있는 ‘자유’, ‘평등’, ‘신의 섭리’ 등의 형이상학적인 개념에 관심을 둘 것이다.

그 시대의 필요한 생산품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생산·소유되는지에 따라서 인류 역사를 원시공동체→노예제→봉건제→자본주의→사회주의의 5단계로 파악하는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가 유물사관의 대변자이고, 인류 역사는 자유를 본질로 하는 ‘절대정신’이 국가와 민족에 의해 점진적으로 구현되는 과정이라 파악한 헤겔은 관념주의 역사관의 대변자이다.


사료 역사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단서가 되는 자료로, 문자로 쓴 문헌이나, 고고학상의 유구·유물·유적, 회화, 사진, 구술 역사(oral history), 전승 등을 포함한다. 역사가가 역사를 연구·기술할 때 이용하는 모든 것이 사료이다. 사료는 제1차 사료와 제2차 사료로 구분한다. 제1차 사료란 원서(原書)를 말하는 것으로, 『삼국사기』나 『고려사』 등이 이에 속하며, 제2차 사료란 원서를 전재한 것으로, 『동국통감』이나 『동국 문헌 비고』 등이 이에 속한다. 사료를 수집하면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실의 진위(眞僞)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사료의 비판 또는 사료의 고증이라 한다.


한편 과거라는 기차가 어떻게 진행해 왔는지에 대해 개인이나 집단은 제각각 지지하는 역사관이 다르다. 사람은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적 연속성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게 마련이다. 즉, 사는 시대가 혼란스럽고 파괴적인 것처럼 보여도 필연적으로 내일의 사회는 어제의 사회보다 발전되고 좋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진보 사관을 신봉하는 사람도 있고, 과거는 결국 돌고 도는 것이라고 다소 체념적이며 순응적인 역사관을 지닌 ‘순환 사관을 신봉하는 부류가 있다. 그리고 진보 사관과 순환 사관의 중간지대에는 “역사는 순환하면서 발전한다.”라고 주장하는 나선형 진보 사관이 있다.



과학적 비판성이 첨가된 근대 역사학은 르네상스 시대에서 시작된다. 이 시대에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볼 수 있었던 인간 중심적인 서술이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olò Machiavelli) 등은 현실적·세속적인 역사풍을 전개하여, 역사를 ‘신학 theology의 노비’로서의 지위에서 인간의 손으로 이루는 것으로 해방시켰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에는 궁극적으로 인간사회는 현세 안에서 완전한 상태에 도달하는 진보를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신적 질서의 발현으로서의 역사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반종교적이며 완전히 세속적인 역사관의 성립을 보게 된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은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저술하여 중세적 역사관을 벗어나 근대 역사학의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하였다.

역사의식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적·공간적 차원에서 가지는 존재론적 자아의식이다. 즉 인간 개개인 하나하나가 따로따로 동떨어진 존재들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서로 연결된 고리들 중의 한 고리로 존재한다는 결속 의식, 혹은 뿌리의식을 의미한다. 역사의식은 인간의 역사적 자각으로서 주체적 실천의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위기의식’이라고도 칭한다.
근대의 역사학 성립
레오폴트 본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

19세기 초 독일에서의 역사학은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게 된다. 프랑스혁명의 여파로 지적 혁명을 경험하고, 지식인들은 근대국가를 갖추기를 열망한다. 근대 역사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레오폴트 본 랑케(Leopold von Ranke)는 이러한 지적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역사학에의 성격을 부여하여 역사학을 확고한 하나의 전문적인 학문 영역으로 확립하였다.
랑케는 역사학을 무엇보다도 일차적 자료에 대한 철저하고도 객관적인 검토를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랑케와 그의 제자들은 엄정한 사료 비판적 방법론에 입각해서 유럽의 근대국가들의 형성 과정을 연구했다. 이에 따라 역사가는 시대를 초월한 ‘공정한’ 관찰자가 되고, 역사학은 모든 학문 중에서 왕좌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18세기에 철학이 신학을 대체했던 것처럼 19세기에 역사학은 철학이 누리던 지위를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근대 역사학은 철저하게 정치사 중심의 서술이 되어 문화적 요소들은 정치적 구조에 종속되어 있는 한에서만 다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20세기의 역사학
20세기 후반의 역사학의 확장을 ‘역사학의 폭발’이라고 일컫기도 하는데 20세기 역사 서술의 경향을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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