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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역사학

예루살렘

by 까롱 2022.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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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과 같은 도시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역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기원전 약 1000년경에 이스라엘의 선조 다윗왕이 구릉에 위치한 '시온의 성'이라 불리던 도시를 정복한 후 유대인들은 이곳을 '다윗의 성'이라 불렀다고 한다 (사무엘 하 5,7: 역대기 상 11, 4-7: 열왕기상 8, 7). 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에 중요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다윗의 이름 밑에 유대 왕국과 이스라엘 왕국이 합병된 후, 예루살렘은 통일왕국의 수도가 되었다(사무엘 하 2, 4: 5, 3). 이렇게 이곳은 다윗왕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정하면서 역사의 중심 무대로 등장한다. 다윗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은 도시에 왕궁과 신전 및 성채를 새로이 건설하고 언약궤를 신전 안에 보관하였다고 타나크에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열왕기상 6예루살렘의 멸망을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서기 70년 이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마태오의 복음서나 루가의 복음서보다는 먼저 쓰였다는 학자들이 많다. 또한 성서학자들은 마르코의 복음서를 Q 문서(예수 어록, 50~60년경에 등장)와 함께 마태오의 복음서의 집필 자료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마태오는 마르코의 복음서를 그대로 베껴 쓰지 않고, 자신의 신학적인 관점에 따라 내용을 축소하거나 삭제하였다. 그 증거로 마르코의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었을 때, "내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셨다고만 간단히 나와 있으나, 마태오의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셨을 때, "너는 베드로이다. 네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라면서 칭찬하셨다는 내용이 추가되어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는 마를 사바 편지(Mar Saba letter)가 필사되었으며, 1973년 출판되었다. 이를 마르코의 비밀 복음서라고 부른다. 이는 두 단락으로 되어 있으며, 예수가 살려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많은 클레멘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진본이라고 여기고 있으나, 일부는 최근 만들어진 가짜라고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학자는 이 책의 집필 연도를 서기 70년에 제2 성전이 파괴되기 직전 또는 직후, 즉 서기 66~74년으로 추정한다. 전통적으로는 사도 베드로의 동반자인 복음사가 마르코를 저자로 보나 현대에는 반박되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다른 마태오의 복음서를 가장 중요히 여기고 본서를 가장 열등이 여겼는데, 이는 다른 복음서들을 짜깁기하고 요약한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1] 19세기부터는 모든 복음서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쓰여 마태오와 루사의 출전으로써의 지위를 획득했다. 오늘날에도 대다수의 학자가 이러한 견해를 따른다.[2]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평화의 마을"을 뜻한다. 성경에서는 '예루샬라임'(Yerushalaim)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예루살렘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고대 가나안 신앙에 등장하는 평화의 신인 살림(Shalim)을 모시는 사원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어 이름인 알꾸드스(알 쿠드스)는 아랍어로 "신성한 도시"를 뜻한다. 알꾸드스라는 지명은 9세기에 무슬림 세력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뒤부터 처음 등장했다. 638년 아랍의 이슬람교도들이 예루살렘을 정복했으나, 그들은 기독교의 성지를 존중하였다. 동시에 이슬람 사원이 솔로몬의 성전 터에 세워졌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다. 1187년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1260년 훌라구의 몽골군이 예루살렘 근방까지 육박했으나 바이바르스가 이들을 몰아냄으로써 맘루크 왕조의 성지 관할권이 확립되었다. 이스라엘 건국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동예루살렘(요르단령)과 서예루살렘(이스라엘령)으로 분리되었다. 1967년 6월 제3차 중동 전쟁 당시에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를 인위적으로 점령하였다. 1980년 7월 30일 이스라엘 국회는 예루살렘 전체를 "분리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규정한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관한 기본법》을 통과시켰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980년 8월 20일에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478호 결의(찬성 14, 반대 0, 기권 1(미국))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국제법 위반으로 간주하며 모든 회원국의 외교관들은 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1516년 오스만 제국의 셀림 1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400년 내내 지배하였다. 술레이만 1세 시대였던 1538년을 마지막으로 성벽이 재건되었다. 이 성벽은 예루살렘 구시가를 형성했는데 19세기 초반에는 유대인, 기독교도, 무슬림, 아르메니아인 구역으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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