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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 역사학

이슬람교

by 까롱 2022.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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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의 정의

무슬림: 이슬람에 복종한 자, 곧 이슬람을 믿는 이슬람 신자를 가리킨다. 여자는 무슨 리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꾸란 꾸란: 이슬람의 경전 이름이다. “읽는다”(아랍어: 카라와)의 동명사로서 그 뜻은 “읽기”이다. 이는 무함마드가 받은 첫 계시가 “읽어라! 창조주이신 너의 주님의 이름으로.”라고 시작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기존에는 ‘코란’이란 표기가 많이 쓰였다. 라술룰라(rasūlu-llāh): ‘성사’(聖使) 라는 뜻으로, 이슬람에서는 주로 무함마드(영어로는 마호메트)를 가리킨다. 성사는 ‘알라가 보낸 사람’을 뜻하며, 이는 예언자보다 격이 높다. 예를 들면; 이브라힘, 무사, 있다 그리고 무함마드이다. 이슬람: 흔히 ‘이슬람교’라고 불리는 종교의 이름이다. 이슬람(Al-islām)은 ‘알라에게 복종한다’라는 뜻으로 "복종·순종"을 의미하는 ‘아살라마’(asalama)에서 파생하여 무함마드가 만든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슬람을 회교(回敎)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중국에서 이슬람을 회회교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다. 한국 이슬람 중앙회에서는 발간한 소책자의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서 ‘이슬람교’의 명칭은 잘못된 것이며 ‘이슬람교’ 또는 ‘이슬람’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간혹 이슬람을 마호메트교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으나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믿는 종교가 아니며, 알라를 유일신으로 하는 종교다. 한국 이슬람 중앙회는 ‘마호메트교’의 명칭 또한 잘못된 것으로 지적한다


이슬람교 이슬람의 경전은 꾸란(코란)이며, 이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아랍어: جبريل)로부터 받은 알라의 말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종파로는 전체 무슬림의 80~90%를 차지하는 수니파와 10~20%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있다. [1][2][3][4] 발칸반도, 중앙아시아, 터키의 무슬림은 수피 무슬림들이 많다. 수니파 내에서 무슬림 모두는 동질 의식을 가지나, 타 종파 간에는 보이지 않는 불신이 있다. [5] 무슬림이 이슬람 경전 '꾸란' 다음으로 중요시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 하디스에 "오직 알라만이 불로 심판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어 이슬람권에선 장례 때도 화장을 금지한다. 예언자라고 가르치는 아브라함계 유일신교로, 불교,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와 함께 세계 5대 종교의 하나이다. ‘이슬람’이라는 명칭은 아랍어로 복종·순종을 의미하며, 알라는 아랍어로 정관사 Al(알)과 신을 의미하는 일라흐(ilāh)가 붙은 알일라 하기 동화되어 알아 쓰(알라)기 되었다고 한다. 이슬람을 믿는 신자는 남자일 경우에는 무슬림이라고 하고 여자일 경우에는 무슨 리마라고 한다.
무함마드
이슬람의 성지(聖地) 메카는 아라비아반도 중부, 홍해 연안에서 약 80km 지점의 불모지 골짜기에 위치하는 도시로, 인도양에서 지중해 안에 이르는 대상로(隊商路)의 요지였다. 옛날부터 흩어진 유대인들이 살았으며 에비온파, 마를 얌 파, 네스토리우스교(경고) 등 마이너리티 기독교 신자들이 로마교회의 탄압을 피해 아라비아에 거주하였다. 메카는 카바신전을 중심으로 아라비아반도의 종교적 중심지였기에 매년 많은 대상과 순례자들이 몰려들었다. 메카의 지배계급은 5세기 말경, 부근 황야에서 온 쿠라이시족이었으며 무함마드는 그 중의 하심가(Hashim 家) 출신이다. 압둘라는 아닌지와 결혼했는데 그 사이에서 무함마드가 태어난다. 무함마드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죽었고 어머니 아니지도 메디나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중 병에 걸려 죽게 된다. 무함마드는 하녀의 손을 잡고 메카로 돌아와 할아버지 앞둘 무 딸림에 의해 자라다 할아버지가 죽자 삼촌 아부 딸림에 의해 양육된다. 삼촌 아부 딸림은 가난한 데다 딸린 식구들이 많아 무함마드는 어린 나이부터 삼촌 아부 딸림을 따라 시리아 지방으로 무역 대상을 떠나게 된다



카디자와의 결혼
무함마드는 가난했던 삼촌 아부 딸림을 생각하며 수익성이 좋은 직업을 구했고, 삼촌 아부 딸림의 소개로 부자였던 과부 카디자의 고용인으로 들어가 그녀를 대신해 시리아 지방으로 대상 무역을 떠난다. 무함마드의 이 무역은 큰 성공을 거두고 현재의 시리아 지방의 특산품을 구해 메카로 돌아왔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의 정직성과 신실함에 깊은 감명을 받고 15살이나 어린 무함마드에게 청혼하였다. 무함마드 25세, 카디자 40세에 둘은 결혼하였다. 부자였던 카디자와의 결혼은 무함마드에게 부와 명예를 주었고 무함마드는 삼촌의 재정적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알리를 입양하였다. 당시 아라비아 각지에는 유대인들과 소수 기독교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사비 교인들도 아라비아에 거주하였는데 이들은 서로에게 종교적인 영감을 주었다. 신성한 달이라 불리던 9월에 금식을 행하던 것은 사비 교의 종교적 영향이다. 유대인들과 마이너리티 기독교 신자들의 영향으로 일신론 사상이 아라비아반도에 전해지긴 했으나 대부분은 여전히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카바 신전에는 360개의 우상이 존재했는데 그 우상들은 '알라'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중재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알라'라는 호칭은 이슬람에서 매우 중요한데, 이 세상의 절대적인 존재 "신"을 의미한다. '알라'는 이슬람에서 유일한 숭배의 대상이다 첫 계시받은 후 점차 무함마드의 양자들과 노예 그리고 친한 친구들이 무슬림으로 개종하였고 3년째 되던 해 무함마드는 자기 친구와 친족을 모아놓고 단이신 알라에 대한 믿음을 선포하게 된다. 하지만 친구와 친족들은 그를 비난하고 모욕하여 무함마드를 무시했다. 그러자 무함마드는 메카로 오는 순례객들에 단이신 사상을 전하기 시작했고 메카의 카바 신전을 지키며 순례객들로 수입을 얻었던 부족원들이 무함마드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부는 그에게 여유를 주었고 무함마드는 금식하며 사색하며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함마드는 시라산 동굴에서 첫 계시가 임하게 된다. 무함마드는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와 죽은 듯했는데 부인이었던 카디자가 모함들을 진정시키고 자신의 삼촌이자 에비온파 기독교인이었던 와가라 븐 나우 팔 이에게 가 사정을 설명하였다. 와라 까는 무함마드가 만난 것이 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이었다며 무함마드가 하느님의 예언자라고 말하였다. 카디자는 집으로 돌아와 무함마드에게 삼촌이 말한 것을 모두 알려주었고 그의 예언자질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무함마드)는 이슬람에서의 최초의 무슬림이 된다. 무함마드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으나 무함마드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다. 네 명의 딸은 잘 성장하였으나 그의 아들들이 유아 때 계속 사망한 것이다. 당시 아라비아 사회는 건장한(몸이 크고 굳센) 남자가 대상무역을 떠나 성공하는 것이 영웅시되던 때였기에 건장한 사내아이를 선호하였다. 무함마드의 부와 명예로 인해 사람들은 그와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메디나로의 피신
무함마드는 AD 619년에 큰 슬픔을 얻게 된다. 첫 무슬림 신자이자 자신의 큰 후원자였던 부인 카디자가 죽은 것이다. 또한 자신의 방패가 되어주던 삼촌 아부 딸림도 그해에 세상을 떠난다. 무함마드는 고통 속에서도 줄어들지 않는 박해와 핍박에 대항하기 위해 무슬림 공동체를 더욱더 강하게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메디나에 도착한 무함마드는 자기 말이 멈춘 수항리의 과수원 땅을 사서 최초의 사원과 자기 집을 지었다. 그리고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씩 알라는 위대하다고 암송하며 절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에서 선지자의 권위를 확립하고 아라비아 부족의 통일을 꿈꾸기 위해 종교적인 일과 세속적인 일을 구별하지 않는 형태의 이슬람 조직 체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즉 제정일치의 사회를 무함마드는 추구했다.



메카 정복
무함마드는 카바 신전의 우상들을 다 부숴버렸고 유일신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포했다. 그때 메카의 모든 집에 있던 우상들이 다 파괴됐다.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보름을 지내고 메디나로 돌아와 이듬해 아라비아 북서쪽 타북 지방으로 원정을 떠났다. AD 632년 무함마드는 메카의 카바 신전을 참배하고 메디나로 돌아오던 중 심각한 열병에 걸려 죽게 된다. AD 628년 무함마드는 메카의 카바 신전을 순례하러 가기로 결정한다. 그해 3월은 아랍에는 신성한 달로 전쟁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메카의 사람들은 무함마드가 전쟁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그에게 2년에서 10년까지의 평화조약을 요구하고 무함마드는 이에 응한다. 그리고 2년 후 AD 630년 1만 명의 무슬림은 무기를 지니지 않은 채 메카로 향하였고 결국 메카로의 무혈입성을 이루어낸다. 메카로 입성한 무함마드는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가장 위대하시다)"를 외쳤고 무슬림들이 따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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