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학 역사학

불교학

by 까롱 2022. 7. 5.
반응형

한국도 유구한 전통 불교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한 이후 1600여 년 동안 주로 승려 신분의 수많은 학자에 의해서 신앙 내적 접근의 연구업적이 쌓여왔다. 원측(圓測, 613~696), 원효(元曉, 617~686), 의상(義湘, 625~702) 등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일대에서 명성을 떨친 승려 학자들도 여럿 배출되었다. 불교학은 유학(儒學)과 함께 한국 전통학문의 핵심적인 축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한국에 근대 불교학이 도입된 것은 20세기 초였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경영을 위한 전략에 편승하여 일본불교가 진출해오자 한국 불교계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대응의 노력으로 불교 전반과 특히 한국불교에 대한 학문적 담론이 활성화되었다. 그중에 이른바 신학문을 수학한 이들은 근대적인 연구 방법 및 서술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능화(李能和, 1869~1943)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1918)는 한국불교 관련 사료의 수집편찬이라는 기초적인 차원에서나마 근대 불교학적 성과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로 여러 일본 학자들이 식민지 경영을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또는 어느 정도 독자적인 관심에 의해서 한국불교를 연구하고 성과를 내놓았다.

 
불교학(佛敎學, Buddhist studies)은 넓은 의미에서는 불교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학문 활동에 대한 총칭이다. 불교란 단순하게 정의하자면 문자 그대로 붓다의 가르침을 가리킨다. 또한 더 나아가서는 그 가르침이 궁극적 진리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해서 전개되는 사상과 행위, 집단 등의 종교현상 전반을 가리킨다. 따라서 불교학이라 하면 붓다(佛陀, Buddha)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불교의 기치(旗幟) 아래서 전개되어온 그런 모든 다양한 부문의 종교현상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이다.

종교학의 한 분야로서의 불교학이라 하면 대개 근대 이후 신앙 외적 방법론에 따라 전개된 불교 탐구를 가리킨다. 이 경우에는 신앙 내적인 불교학의 성과들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불교 신행의 일환으로서 연구의 대상이나 소재가 되는 것이지, 동등한 반열의 학문적 담론이나 성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는 신앙 내적인 동기와 목적에 의한 연구라 할지라도 근대 세속학문의 방법과 형식을 따르면서 학술 가치와 의의를 인정받는 성과를 낳기도 한다. 따라서 그 경계선이 언제나 일정하고 뚜렷한 것은 아니다.
여느 종교의 경우에서나 마찬가지로 불교에 대한 학문적 탐구는 이에 임하는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신앙 내적 접근과 신앙 외적 접근이 그것이다. 신앙 내적 접근이란 불교에 대한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변증론적인 관심과 의도, 목적을 가지고 불교를 탐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붓다의 가르침이 참이라는 믿음을 전제하고 그 가르침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에 따른 ‘올바른’ 실천 방법을 모색하는 지적 활동을 가리킨다.

반면에 신앙 외적 접근이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신앙을 전제로 하지 않은 채 불교의 이런저런 면모를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신앙 외적 접근은 서양에서 계몽주의운동 이후에 대두한 귀납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론을 바탕으로 하는 근대 불교학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근대 불교학에서는 탐구의 목적을 ‘올바른 신행’의 모색에 두는 게 아니라, 불교의 제반 사항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획득하고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이해를 도모하는 데 둔다.


2. 역사와 전개
1) 인도 불교
종교 신행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가르침에 대한 지식, 해석, 이해를 위한 노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붓다의 교설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의 모색을 위주로 하는 이른바 전통적인 불교학은 붓다가 가르침을 펴면서 그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붓다의 가르침을 성문화하여 경전으로 편찬한 결집 과정에서 이미 고도의 학술적인 활동이 전개된 셈이었다. 어느 것이 진짜 붓다의 가르침이고 어느 것을 신빙성이 떨어져 편찬에서 제외할지를 판단해야 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율론(經律論) 삼장(三藏) 가운데 논장(論藏)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특정 저자와 분(部派)파의 해석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이미 고도의 학술적인 탐구의 성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인도 밖 지역으로서 가장 일찍 불교가 전래한 곳은 스리랑카였다. 스리랑카는 초기 경전들을 전승하고 동남아 각지로 불교를 전파하는 거점 역할을 하였다. 서력기원 전후해서 불교가 처음 전래한 중국에서는 경전의 수집과 번역, 그리고 연구가 축적되면서 5세기부터 7세기 사이에 이른바 교상판석(敎相判釋)이 불교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경전에 담긴 방대한 양의 가르침을 두고 그 설법의 시기가 언제인지, 어느 것이 가장 궁극적인 설법인지, 각 설법의 뜻과 의도는 무엇인지, 수행과 깨달음의 방법을 기준으로 하면 경전들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등을 구명하여 교설의 종합적인 체계를 정립하고자 했다.
불교가 그 발상지인 인도 바깥으로 퍼져나가면서 불교에 대한 학문적 탐구도 국제적인 범위와 맥락에서 전개되는 계제에 이른다. 각지에서 경전을 현지 언어로 번역하였고, 이른바 농소초(論疏鈔)로 대표되는 주석(註釋)의 형식이 정립되었다. 그런 성과들이 전통 불교학의 대종을 이루게 되었다. 1)


어떤 가르침, 어떤 경전이 불교의 핵심이라고 보는가, 또한 그래서 어떤 신행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종파가 형성되었다. 7세기에 불교가 전래한 티베트에서도 특유의 대면 토론식 교리논쟁과 경전 번역 및 티베트어 대장경 편찬을 통해서 나름의 불교학 전통이 형성되고 계승되어왔다. 이러한 전통 불교학의 주체는 대개 불교 승려들이었다. 그들은 신행의 일환으로서 경전을 수집하고 필사하거나 간행하여 유통했으며, 그 목록의 정리라든가 해설과 주석, 사전, 요약 등의 저술 그리고 각 지역 불교 또는 불교 전반의 역사에 관한 서술 등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쌓고 전승하였다.

2) 신앙 외적 접근
19세기 초반까지는 인도불교에 대한 보고나 연구가 별로 없었다. 인도에서는 이미 오래전 13세기경부터 인도에서는 살아있는 종교로서의 불교는 사라졌고, 다만 유적과 문헌으로만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빠알리(pāli)어 경전과 산스끄리뜨(sans crit)어 경전들이 수집, 정리, 번역, 연구되면서 19세기 후반부터는 인도불교가 서구의 근대 불교학에서 중심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가 되었다. 인도의 언어가 인구어(印歐語, Indo-European language)에 속하여 서구의 학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낯설었던 점이 그 이유의 일부로 꼽히기도 한다. 3) 게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유럽과 일본의 학자들이 중앙아시아 실크로드 탐사를 통해 많은 옛 불교 문서들을 발굴해내어 연구 소재가 풍부하게 공급되었다.

동북아시아 한문 문화권의 불교에 대한 연구는 서구에서는 상대적으로 뒤늦게 본격화되었다. 19세기 말엽에 이르면 중국에도 이미 많은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진출하여 활동하면서 중국불교에 대한 연구업적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문 불전(佛典)에 대한 학문적 관심과 연구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본격화되었다. 중국불교 연구에서는 일본 학자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본이 동북아시아 한문 문화권 일대를 침략하여 점거하고 식민지통치를 했던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일본은 일찌감치 자발적으로 근대화에 나섰고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선구적으로 서구 근대 학문을 도입하였으며 불교학에서도 그러하였다. 20세기 초에 당시 일본 불교학계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편찬한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은 향후 전 세계 불교학계에서 기본 전거로서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신앙 외적인 접근도 일찌감치 시작되었다. 특히 15세기 후반부터 이른바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이어서 열강의 식민지 개척 경쟁이 벌어지면서, 서구의 탐험가와 그리스도교 선교사, 외교관들이 아시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불교를 접하고 관찰한 보고서와 저술들이 전해진다. 그러나 아직은 불교라는 명칭도 등장하지 않았었다. 아시아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보고된 그 신행들이 기실은 동일한 종교의 다양한 모습임을 알아차리고 이를 불교라는 명칭으로 적시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이다. 2)

전문 학자들에 의한 근대적 불교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19세기부터였다. 근대 불교학의 등장에는 다양한 요인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과학적인 문헌학이 크게 발전하고 아시아 각지의 언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것이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특히 식민지 통치를 위해 현지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점이 큰 동력을 공급하였다.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을 피하여 달라이 라마가 망명길에 오르자 뒤를 이어 수많은 티베트 승려들이 인도와 네팔, 나아가 유럽과 미주로 망명하였다. 이를 계기로 서양의 불교학자들이 티베트 승려들과 협동하여 티베트불교에 대한 연구를 크게 활성화했다. 근래에는 특히 미주 불교학에서는 티베트불교 분야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반응형

'종교학 역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 종교  (0) 2022.07.07
그리스 신화  (0) 2022.07.06
종교적 정체성  (0) 2022.07.06
종교개혁가  (0) 2022.07.06
불교의 교리  (0) 2022.07.05

댓글